윤수보 : 회화의 회화

기간: 2022. 03. 19 ~ 04. 09

장소: 제주시 일주서로 7827-1, 2층, 전시실A

문의: 070-7795-5000


이룸갤러리 개관 1주년 기념

윤수보의 '회화의 회화'





초대의 글

 

이룸갤러리 1주년을 맞이하며...


그동안 분주한 날들이 헛된 시간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월 2회의 갤러리 초대전시 및 기획전, 7번의 육지 아트페어 참석, 컬렉터들과의 만남, 

작가와의 만남, 세미나 개최 뿐만 아니라 지역 미술계 발전을 위한 제주화랑협회 설립, 

작가 발굴 및 대화의 시간들을 돌아보니 열정을 다 쏟은 1년이었습니다. 


지난 1년을 보낸 것보다 앞으로 이룸갤러리에 거는 기대가 더 큰 것은 

열정이 있기 때문인 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작가분들의 협력과 제주화랑협회의 임원분들의 격려로 더 큰 미래가 있음을 기대합니다. 


코로나 오미크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조심스레 1주년 기념 초대개인전에 윤수보 화백님을 모셨습니다. 

윤 화백님은 해외 여러 곳에서 초대전시를 하시고 사람과 자연, 빛, 악기 그림을 통하여 우리에게 평안한 쉼을 주십니다. 

모쪼록 걸음하셔서 정서적 갈증을 치유하고 힐링의 시간을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이룸갤러리 관장 이희숙




윤수보의 '회화의 회화'


윤수보의 회화에는 이른바 ‘포스트모던의 포스트’라는 이 시대. 

지금의 정신과 구조가 잘 녹아든 색채와 형태의 전개가 있다. 

화려하고 선명한 색감의 줄기들이 화면 전체를 휘감고 

거기에서부터 확산되는 빛의 약동은 무수한 신비의 공간을 화면에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빛의 숲과 같은 현란한 동시에 은밀하기 짝이 없는 그의 공간은 오히려 지극히 자립적이고 

고도로 정제된 형태와 색의 확산과 순환으로부터 발산되는 공간이다.

이때의 형태와 색들은 단순히 어떤 고착된 사물의 묘사를 위한 것도 아니지만 

대상의 효과적인 인식을 위해 칠해지는 색칠은 더욱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별다른 이야기꺼리나 내용을 동반하지도 않는 색의 약동적인 생동감 자체를 중요시하며 

거기서 파생되는 빛과 그 초월된 공간성이 소중하게 다루어 질뿐인 공간 의식이다.


사실 지금까지 우리들의 그림에 대한 선입관에는 어떻든 

내용이 풍성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꺼리가 살아 있어야 좋은 그림이라는 것이 은연중 자리 잡고 있다. 

물론 그러한 태도의 그림에도 좋은 작품이 없을 수 없겠지만 

그러한 태도의 작품이라면 이미 시대의 살아있는 정신은 빈약한 것이 되고 만, 

일종의 퇴물 적 그림일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말하자면 그것은 현실의 정신(리얼리티)을 상실한 구태의연하고 상투적인 그림이고 

말 그대로 신선미를 잃어버린 작품이라는 뜻이다. 

오늘날에 요구되는 회화는 풍성한 내용이나 이야기꺼리 보다는 

회화 자체의 형식적 가치를 충족시키면서도 자체 발생적인 이야기나 내용을 동반하는, 

사뭇 까다롭기 그지없는 정신적 자세를 기본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보다 복합적인 회화로 발전한 셈이다.

바로 작가 윤수보의 이 빛의 회화가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회화의 회화’라고나 할 그의 그림은 회화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조건으로서 

색채의 평면성과 장식성을 앞세우면서도 그것을 보다 정신적인 비 물질의 차원으로 유도한 채. 

하나의 색다르고 신선한 공간체험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해 주는 일련의 초월성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마치 꽃과 같은 자연물이나 악기나 의자와 같은 일상의 기물들이 분명히 등장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일상에서 조우하는 사물들이 아닌, 

기묘한 이미지로 변신하는 것이 그것이며 

그 이미지마저도 그저 변신된 존재가 아니라 독특한 빛의 공간에 스며들고 녹아든 이미지들이고 

빛과 더불어 춤추고 생동하는 초월성을 거기에 포함시키고 있는 차원의 것들이다.


필자가 그의 그림이 ‘포스트모던 이후’의 정신과 구조를 잘 반영시키고 있다고 언급한 것도

사실 이러한 초월성을 염두에 둔 것이며 

이것은 모더니즘이나 포스트모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요소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이 초월적 빛의 공간성은 모더니즘이 추구했던 이른바 ‘색면 회화’의 메카닉 하기 짝이 없는 

자율의 회화와도 다르지만 포스트모던의 키치 위주의 산만하고 짙은 표현성과잉의 회화와도 

거리를 두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회화는 지금, 이 시대, 곧 ‘포스트모던의 포스트’라 일컫는 

새로운 모더니즘의 맥락 속에서 스스로의 회화를 성장시키고 증식시키는 와중에 있는 회화임에 틀림이 없다.

실상, 그러한 맥락 속에서 그의 회화를 바라본다면 참으로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회화공간의 설정이 

거기에 존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멋들어진 빛의 줄기와 그 순환적 휘감김이 화면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감싸며 

신선하고 신비로운 세계로 이끌어 가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서사시오, 

초월적 신화의 세계라 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윤우학<미술평론가, 충북대 명예교수>